뀌베 와인, 뀌베 위스키 그 특별한 관계의 비밀

최근 지인들과의 와인 모임에서 ‘뀌베(Cuvée)’라는 단어가 붙은 와인을 마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목 넘김과 진하고 풍부한 향이 인상 깊어 기억에 남았는데, 며칠 뒤 우연히 들른 위스키 샵에서 ‘뀌베 캐스크’라는 이름이 붙은 위스키를 발견하고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와인에서 쓰이는 용어가 위스키에, 심지어는 맥주에까지 사용되는 것을 보며 이 특별한 단어, ‘뀌베’에 담긴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뀌베 와인, 뀌베 위스키 이렇게 ‘뀌베’라는 이름표를 단 와인과 위스키의 관계가 궁금하셨던 분들을 위해 그 비밀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뀌베 와인, 와인병을 손으로 들고 있는 이미지
뀌베 와인, 우리가 알고 있는 뀌베는 와인부터 시작됩니다





뀌베(Cuvée)의 본질: 와인에서 시작된 이야기, 뀌베 와인 🍷

‘뀌베’라는 단어의 여정은 프랑스 와인에서 시작됩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큰 통(vat)’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뀌브(Cuve)’에서 유래했습니다. 사전적으로는 ‘큰 통에 담긴 내용물’이라는 뜻이지만, 와인의 세계에서는 훨씬 더 다채롭고 특별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1. 특별한 ‘블렌딩’의 의미

가장 보편적으로 ‘뀌베’는 여러 와인을 섞는 ‘블렌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을 만들 때, 북쪽 마르사네 지역의 피노 누아와 남쪽 쌍뜨네 지역의 피노 누아를 섞어 균형 잡힌 맛과 향을 만들어 내는데, 이렇게 블렌딩된 와인을 ‘뀌베’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포도밭이나 지역의 와인을 섞어 양조자가 의도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예술적인 과정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2. 샴페인의 정수, ‘첫 번째 압착즙’

샴페인에서 ‘뀌베’는 품질의 정점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샴페인을 만들 때는 보통 4,000kg의 포도를 압착하여 총 2,550L의 포도즙을 얻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짜낸 2,050L의 최상급 포도즙을 ‘뀌베’라고 부르며, 이후에 추가로 짜내는 500L는 ‘따이으(Taille)’라고 구분합니다. 첫 압착즙인 ‘뀌베’는 색이 맑고 산도와 풍미가 가장 뛰어나 고급 샴페인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Krug Grand Cuvée, Pol Roger Cuvée Sir Winston Churchill 처럼 샴페인 이름에 ‘뀌베’가 들어간 경우, 그 샴페인 하우스의 자부심을 담은 최고급 라인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3. 와이너리의 자부심을 담은 이름

때로는 와이너리의 특정 제품 라인이나 최고급 와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마치 자동차 회사가 ‘쏘나타’나 ‘그랜저’처럼 모델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뀌베’라는 단어가 항상 최고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 와인 등급 중 가장 기본적인 테이블 와인(VDT) 등급의 ‘뀌베 스페셜 레드’처럼, 여러 포도를 혼합하여 만든 일상적인 와인에도 이 용어가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뀌베’는 문맥에 따라 최고급 블렌딩부터 기본적인 혼합주까지 폭넓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뀌베, 위스키를 만나다: 캐스크의 마법

그렇다면 와인의 용어인 ‘뀌베’가 어떻게 위스키의 세계로 넘어오게 된 것일까요? 그 연결고리는 바로 위스키의 숙성 과정에 숨겨진 ‘캐스크(Cask, 술통)’에 있습니다. 위스키는 오크통에서 수년간 숙성되며 색과 맛, 향이 완성되는데, 어떤 술을 담았던 캐스크를 재사용하느냐에 따라 위스키의 개성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뀌베 캐스크’ 숙성 위스키는 바로 ‘뀌베 와인’을 숙성시켰던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위스키를 의미합니다. 주로 최고급 레드 와인을 담았던 뀌베 캐스크가 사용되는데, 캐스크에 남아있던 와인의 향과 특성이 위스키 원액에 서서히 녹아들며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냅니다. 이와 비슷하게 위스키를 마시는 분들에게는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쉐리(셰리) 위스키가 있습니다.(셰리 와인을 숙성시켰던 오크통을 사용해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방법)


뀌베 와인 오크통을 사용해 피니시 작업을한 글렌알라키 뀌베 캐스크 피니시 위스키
글렌알라키 위스키는 다양한 오크통을 사용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C&C 뀌베 캐스크’는 뀌베 레드 와인 캐스크에서 최소 4년 이상 숙성된 아메리칸 싱글몰트 위스키입니다. 이 위스키는 우리가 흔히 아는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의 꾸덕한 건과일 풍미와는 다르게, 체리, 라즈베리 같은 붉은 과실의 신선하고 화사한 프루티함이 특징입니다. 와인 캐스크 내부를 깎고 다시 태우는 STR(Shaved, Toasted, Re-charred) 과정을 통해 바닐라와 캐러멜 풍미를 극대화하기도 합니다.

한편, ‘워터포드 더 뀌베’ 위스키처럼 와인 캐스크 사용 여부와는 별개로, 와인에서처럼 ‘최상의 결과물을 위한 특별한 블렌딩’이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제품 이름에 ‘뀌베’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여러 밭에서 수확한 보리로 만든 원액들을 정교하게 혼합하여 복합적인 풍미를 구현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뀌베 와인 그리고 뀌베 위스키의 관계 정리

결론적으로 뀌베 와인과 뀌베 위스키는 두 가지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 물리적 관계: ‘뀌베 캐스크 위스키’는 ‘뀌베 와인’을 담았던 술통을 직접 물려받아 숙성함으로써 와인의 풍미를 위스키에 더하는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가집니다.
  • 개념적 관계: ‘뀌베’라는 단어가 가진 ‘특별한 블렌딩’, ‘최고의 결과물’, ‘프리미엄 에디션’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공유합니다. 이는 위스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위스키 풍미를 더한 ‘뀌베 클라리세’ 맥주처럼 다른 주류 카테고리로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뀌베 와인, 뀌베 위스키

이제 ‘뀌베’라는 단어를 보면 그저 ‘비싼 술’이라고 생각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정성스러운 블렌딩’과 ‘특별한 숙성 과정’이라는 풍부한 스토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번에는 뀌베 샴페인 한 잔으로 섬세한 기포와 신선함을 즐겨보고, 또 다른 날에는 뀌베 캐스크 위스키를 마시며 와인의 흔적이 남긴 독특한 과일 향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나의 단어에서 파생된 다채로운 맛의 세계를 경험하는 즐거운 여정이 될 것입니다.









참고하면 좋은 글이 적혀있는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