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타케츠루 마사타카

타케츠루 마사타카 Taketsuru Masataka 이 이름은 위스키를 좀 마셨다고 하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라고 불려지는 일본의 위스키 기술자입니다. 타케츠루의 업적은 현 시간에 와서 더욱 크게 돋보이는 사람 중 한사람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산토리 위스키, 마르스 위스키 그리고 니카 위스키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타케츠루 마사타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타케츠루의 출생 그리고 아버지의 영향

타케츠루 마사타카는 일본에 있는 히로시마현 가모군 다케하라마치 에서 1894년 6월 20일 태어났습니다. 그는 사남 오녀의 삼남으로 아버지인 다케츠루 케이지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주조업을 하던 집안이라 그는 어렸을 때부터 주조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 걸로 보입니다. 타케츠루의 아버지는 술을 만들 때 엄격하며 강한 신념을 관철하는 분이셨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품질주의의 생활태도는 타케츠루에게 많은 영향력을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2023년 현재도 타케츠루 생가는 ‘다케츠루 주조 주식회사’ 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조의 첫 시작은 오사카 고등 공업학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타케츠루는 이 고등학교의 양조과에서 주조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오사카 고등 공업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양술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때가 1916년 3월 이였습니다. 이때 오사카 고등 공업학교 선배인 이와이 키이치로의 도움으로 서양술에 관해 일본내에서 유명했던 오사카의 셋츠주조에 입사하기도 하였습니다. 타케츠루는 입사후에도 뛰어난 능력으로 여러 주조과정의 문제점을 개선하여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타케츠루는 셋츠주조에서 능력을 인정을 받고 회사 사장의 눈에 띄어 위스키의 본국인 스코틀랜드로 유학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셋츠주조의 진짜 위스키를 만들고자 한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타케츠루의 유학 그리고 결혼

19세기의 일본에서는 그저 미국의 모조품 위스키를 만들 뿐 순수 국산 위스키는 전혀 만들어 지지 않았습니다. 타케츠루는 외국에 가서 위스키에 대해 공부하고자 1918년 12월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대학교에 진학을 하여 1919년 여름에 위스키에 필요한 유기화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타케츠루는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1919년 4월 스코틀랜드 Stathspey에 있는 Longmorn 증류소에서 견습으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7월에는 James Calder & Co. Bo’ness 증류소에서도 견습과정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1920년 1월 8일 양쪽 가족의 심한 반대도 있었지만 그는 Jessie Roberta “Rita” Cowan과 결혼을 진행했습니다. 결혼 후 그들은 처음에는 캠벨타운 Campbeltown에 살았습니다. 타케츠루의 마지막 견습은 1920년 5월에 Hazelburn 증류소에서 시작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1920년 11월에 뉴욕 그리고 시애틀을 거쳐서 자신의 조국인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케츠루 마사타카와 그의 아내 리타의 사진이다.


일본 복귀후 타케츠루의 시작

일본에 돌아왔지만 당시 일본의 경제는 좋지 못하였고 셋츠주조의 진짜 위스키 만들기 프로젝트는 무산이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타케츠루는 셋츠주조에서 퇴사를 하게 됩니다. 일본에 돌아온 타케츠루는 코토부키야 Kotobukiya에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코토부키야는 나중의 산토리 Suntory 의 전신입니다. 그는 교토 옆쪽에 위스키 양조장 설립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증류소가 현재의 일본을 이끌게 된 일본의 위스키 야마자키 증류소 입니다.


새로운 시작 Dai nippon Kaju KK 증류소

산토리에서의 계약기간인 10년을 채우고 1934년 타케츠루는 일본의 북부에 속해 있는 훗카이도의 요이치에 자신의 증류소를 만들게 됩니다. 이 증류소의 이름은 대 일본 과즙 주식회사 Dai nippon Kaju KK로 타케츠루는 이 지역이 일본에서 스코틀랜드와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했으며 나중에 이 회사 이름은 니카 Nikka로 변경하기도 하였습니다. 니카 위스키는 1940년 10월경에 처음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처음에는 회사의 이름처럼 사과 주스를 판매하는 회사를 생각해서 만들었지만, 경영난으로 인해 사과주스 증류해서 술을 만들어 팔게 되었다는 약간은 우스운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타케츠루 그리고 그의 부인의 마지막

타케츠루의 아내인 Rita가 먼저 1961년 1월에 간 질환으로 사망하게 되었으며, 타케츠루는 18년뒤 1979년에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아내와 함께 요이치 지역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와서 일본에서 마지막 생애를 보낸 리타의 인생도 대단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타케츠루 마사타카는 지금의 일본 위스키를 존재 하게한 장본인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일본에서의 ‘맛상’ 이라는 드라마 방영으로 타케츠루의 대한 관심은 예전보다 많이 높아진게 사실입니다. 타케츠루가 없었더라면 일본이 과연 지금의 세계적인 뛰어난 위스키를 생산을 할 수 있었을지, 아니면 아직도 위스키 변방국으로 남았을 지는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업적과 그의 일생은 일본 위스키 기술 성장에 관한 내용 만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